2021년 여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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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기간 2021.06 ~ 2021.08
출전

작가 : 김경인

작품명 : 여름의 할 일

전문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
잎 넓은 나무엔 벗어놓은 허물들
매미 하나 매미 둘 매미 셋
남겨진 생각처럼 매달린
가볍고 한껏 어두운 것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올여름은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을 것
한 용접공이 일생을 바친 세 개의 불꽃
하나는 지상의 어둠을 모아 가동되는 제철소
담금질한 강철을 탕탕 잇대 만든 길에,
다음은 무거운 장식풍의 모자를 쓴 낱말들
무너지려는 몸통을 꼿꼿이 세운 날카로운 온기의 뼈대에,
또하나는 허공이라는 투명한 벽을 깨며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낡은 구두 한 켤레 속에,

그가 준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 꿈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러니까 올여름은 꿈꾸기 퍽이나 좋은 계절

너무 일찍 날아간 새의
텅 빈 새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는 여기에 남아
무릎에 묻은 피를 털며
안녕. 안녕,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삶이여, 너는 녹아 부드럽게 사라져라

넓은 이파리들이 환해진 잠귀를 도로 연다

올여름엔 다시 깨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