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거짓말로 이어진 우정」
“아빠가 친한 친구가 있는데, 한 번 만나 볼래?”
아빠가 나한테 친구를 소개해준 적은 없었다. 내가 아빠한테 내 친구를 소개한 거면 몰라도.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친구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아빠가 선뜻 내게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니. 그 분은 어떤 분이실까? 아빠처럼 식당을 운영하는 분일까? 그 분에게도 내 또래의 자녀분이 계실까? 딸일까, 아들일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아빠 친구는 식당을 운영하지도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아 내 또래의 딸이나 아들이 있지도 않았다. 아빠의 식당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 어색해 했다. 아빠가 삼촌에게 나를 소개했다.
“얘는 내 딸이야.”
삼촌은 대답이 없었다. 그때 식당 손님께서 아빠를 찾으셨고, 아빠가 자리를 떠나자 테이블 위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나는 속으로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그때, 삼촌이 처음 입을 열었다.
“조카는 몇 살이야?”
“네? 스물두 살이요.”
“나는 오십 살이나 먹었대, 형이.”
어눌하고 떠듬떠듬한 말투였다. 삼촌은 ‘오십 살’이라고 말할 때,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전부 펼쳐 숫자 ‘5’를 강조했다. 동시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삼촌과의 첫 만남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곧 삼촌의 화법에 익숙해져 갔다. 짧게 자른 머리,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삼촌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아빠는 그런 삼촌과 10년을 함께 했다. 10년 전에 아빠는 마트를 했었는데, 마트 건너편에는 치킨집이 하나 있었다. 그때 치킨집 사장님의 아들이 삼촌이었다.
삼촌은 삼촌의 엄마 다음으로 우리 아빠를 가장 좋아했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출근부터 퇴근까지 삼촌이 아빠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처음에 아빠는 이런 삼촌의 행동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삼촌으로부터 많은 힘을 얻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과 요즘 같은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순수함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삼촌은 조금이라도 궁금한 게 생기면, 아빠가 설거지를 하든, 오후 타임 식재료를 준비할 때든 질문 공세를 날리곤 했다.
“형, 구름은 왜 움직이는 거야?”
“강아지도 엄마가 있어?”
“죽으면 어디로 가?”
가볍고 사소한 질문부터 무거운 질문까지 질문의 내용은 정말 다양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곤란해 하거나 귀찮은 기색 없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대답해주었다.
“구름은 바람이 불면 움직여.”
“강아지도 성수처럼 당연히 엄마가 있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 다른 세계로 가는 거야.”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냐’는 삼촌의 질문에, ‘하늘나라로 간다’고 한 아빠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왜냐하면 작년 가을에 삼촌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나는 혹여나 삼촌이, ‘죽으면 하늘로 간다면서, 왜 우리 엄마는 하늘에 안 보여?’와 같은 질문을 할까 조마조마했다. 만약 삼촌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나는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삼촌의 질문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유튜브 찍으면 하늘나라에서도 볼 수 있어?”
“네? 유튜브요?”
순간 당황한 나는 오히려 되물었고, 삼촌은 놀란 토끼 눈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형이 하늘나라에도 티브이가 있대.”
“아빠가 그랬어요? 티브이가 있다고?”
“응. 그래서 엄마도 거기서 드라마 볼 수 있대. 진짜로!”
삼촌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마치 엄청난 비밀을 알아냈다는 듯이. 나는 그때 삼촌의 커다란 눈망울과, 식당 주변의 여름나무들이 선선한 바람에 흔들렸던 것, 삼촌이 내게 보여준 휴대폰 배경화면 속 화려한 머리를 한 삼촌의 어머니 얼굴까지 전부 기억에 남는다.
사실 나는 이전에 아빠에게 따지듯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삼촌도 엄연한 어른인데, 왜 자꾸 그런 거짓말을 하냐고. 삼촌이 장애인이라서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아빠는 내게 진지한 얼굴로
“너는 가족을 잃어본 적이 있어?”
라고 물었다. 나는 아빠의 묵직한 질문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삼촌에게 거짓말하는 게 정당화될 순 없었다.
“가족을 잃어본 적은 없지. 얼마나 슬픈지도 모르고. 근데 그렇다고 거짓말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 나중에 진실을 알면 삼촌이 엄청 슬퍼할 수도 있어.”
내 말에 아빠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 곧, 삼촌의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빠의 말은 이러했다. 삼촌에겐 가족이 어머니와 남동생 뿐이었는데,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결혼 후 삼촌과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그렇게 삼촌은 세상에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이후 아빠는 삼촌을 식당 직원으로 고용해 급여를 챙겨주고 매 끼니마다 함께 식사하며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아빠가 삼촌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이런 인연을 이어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단순한 생각은, 아빠와 삼촌이 함께 지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과정 속에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식당 마감 시간이었다. 아직 하늘이 푸르렀고 하얀 구름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아빠와 삼촌,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식당 앞 파라솔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때 삼촌이 말했다.
“형. 엄마가 하늘에서 나 보고 싶어 해. 꿈에서 그랬어. 나 유튜브 찍으면 엄마가 볼 수 있어?”
“당연하지. 티브이로 연결해서 보면 되지. 저기 서 봐. 내가 찍어줄게.”
그러자 삼촌은 부끄럽다고, 얼굴에 휴대폰을 들이미는 아빠를 피해 다녔다. 우리 셋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나는 비록 거짓말로 이어졌지만, 아빠와 삼촌이 단짝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으로 삼촌의 세계를, 삼촌은 삼촌만의 방식으로 아빠의 세계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순수함의 세계.
삶의 단짝이란 무엇일까. 서로의 세계를 이어주는 지켜주는 게 진정한 단짝의 정의가 아닐까?
나는 아빠와 삼촌의 우정을, 그들의 세계를 끝까지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