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겨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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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기간 2022.11 ~ 2023.04
출전

작가 : 진은영

작품명 : 어울린다

전문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이런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들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 솟아나는 저녁이 잘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너에게는 빈 새장이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진은영 | 어울린다